통일신라 청동용기류의 제작기술 고찰: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 출토 유물을 중심으로
An Examination of Bronze Vessel Technology in the Unified Silla Period: Case Study on the Bronzes Excavated from Gwanbuk-ri Site in Bu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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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Abstract
Archaeological excavations in Buyeo had revealed Bronze vessels interred within a hole in the building at the Gwanbuk-ri site. These bronze vessels are dated to the Unified silla period (9-10th centuries). To identify the bronze vessels’ manufacturing technology, metallurgical analyses were carried out using Optical Microscopy, SEM-EDS and EPMA. The results allowed a reconstruction of the manufacturing process of bronze vessels in the Unified silla. It proved that bronze vessels were manufactured with Cu-Sn alloy with varying tin contents, which may be related to the application of uncontrolled procedures in making the bronze alloys. Also a casting process was used to shape the bronze vessels and the strength and hardness of the container were improved through a quenching process. Twins were observed in one of the samples, so it was assumed that hot working had been attempted. Non-metallic inclusions in bronze vessels have circular or polygonal shapes, and Cu and S were detected. The presence of Cu-S inclusions showed the probable use of copper sulphide ores for metal production and smelting. Se and Te in the inclusions of the bronze vessels show that the copper ore is different. From the results of metallurgical analyses of bronze vessels excavated from other regions of the same era, casting and quenching treatments were confirmed, and the sequential relationship of the technological system was revealed.
1. 서 론
인류가 동·식물류를 식용이 가능한 식품으로 가공하여 섭취한 이래로 식기의 소재는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1]. 식기는 크게 음식을 담고 저장하는 용기와 음식을 운반하기 위한 식도구로 구분된다. 최초로 사용한 식기의 재질은 주변에서 구하기 쉽고 가공이 용이한 목재 또는 동물의 뼈였을 것이다. 서포항유적의 신석기시대 주거지에서는 뼈로 만든 숟가락이 출토되었으며 기원전 1세기 경의 유적인 광주 신창동 저습지유적에서는 목제 주걱과 국자, 목기가 출토되었다[2]. 하지만 목재는 충해에 약하고 파손되기 쉬워 유용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목재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흙으로 제작한 토기를 사용했으며[1] 이는 사천 늑도유적에서 출토된 토제 국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2]. 하지만 토기는 매끄럽지 못한 표면과 기벽 내부의 공극으로 인한 수분의 침투로 식품의 보관에 유용하지 못했다. 이에 토기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유약을 발라 고온 소성한 자기와 청동식기를 사용하게 된다[1]. 그 중 청동식기는 놋그릇 또는 유기라고 불리며 스테인레스 그릇이 출현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강도와 경도가 좋고 잘 파손되지 않아 식기로 활용하기 용이하다. 또한 청동의 주요 성분인 구리는 여러 가지 미생물에 향균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3]. 그러나 청동식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광산에서 구리 광석과 주석 광석을 채취하여 선가공해야 하며 제련, 주조 및 단조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실생활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없었다. 청동을 소재로 한 식기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 후 1~2세기경으로 편년되는 황해도 해주 흑교역 동쪽 출토 국자이다[2]. 또한 삼국시대의 금관총에서는 1점의 청동숟가락과 3점의 은제숟가락이 출토되었으며 무령왕릉에서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3점의 청동숟가락과 1벌의 청동젓가락이 발견되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인 용기는 삼국시대 신라왕경의 적석목곽분에서는 출토되었으며 이는 구리-주석-납 합금 소재를 이용하여 주조로 제작되었다[4]. 청동용기는 통일신라의 분묘, 왕궁지 및 사지 등에서 출토되나 그 예가 드물어 널리 사용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청동용기의 출토 횟수는 고려와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증가하는데, 특히 고려시대 사지와 분묘에서 많은 수가 출토되어 일부 계층에서 사용되다가 점차 보편적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1,4].
식도구인 숟가락과 젓가락을 제외한 청동용기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고려시대 분묘에서 출토된 청동용기를 대상으로 한 고고학적 연구[1,4]와 출토된 청동용기의 제작방법과 기술의 발전과정을 확인하는 금속학적 연구로 구분된다[5-12]. 금속학적 연구는 주로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출토된 청동용기 또는 고려~조선시대의 청동용기를 위주로, 방짜기술이 도입되고 발전되는 과정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었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 청동용기의 제작기술에 대한 보편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경주 이외의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용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의 청동용기 매납구덩이에서 출토된 청동용기의 금속학적 분석을 통해 제작방법을 확인하고 기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제작기술 발전과정에 대해 논하고자 했다.
2. 연구 방법
본 연구의 대상은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의 통일신라시대 청동용기 매납구덩이에서 출토된 청동용기로, 구덩이 상부에 중국제 청자완과 철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인위적으로 매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구덩이 바닥 부분에는 주자 2점과 정병을 눕혀놓고 그 위를 감싸듯이 청동 대접과 접시를 뒤집어서 포개어 놓았다(그림 1). 구덩이에서 출토된 유물은 주자 2점, 정병 1점, 대접과 완 19점, 접시 1점, 숟가락 3점, 중국제 청자완 1점, 철기 1점으로, 시기적으로 볼 때 대체로 9세기 말에서 10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3]. 이 중 14점을 선정하여 미세조직 관찰과 성분 분석을 실시했다. 14점 중 대접과 완이 13점, 접시가 1점이며 바탕금속이 존재하는 부분을 인위적으로 채취하거나 파손된 부분을 분석에 사용했다. 미세조직 관찰 및 성분 분석을 위해 마운팅한 시편을 SiC 연마포(#1,200~#4,000)로 연마했으며 다이아몬드 연마제와 광택천을 이용하여 경면 연마했다. 연마한 시편을 에틸알콜에 침적시켜 초음파세척기로 세척하여 건조했으며 이후 염화철 부식액(FeCl3+HCl+H2O)으로 에칭했다. 미세조직은 광학현미경(Optical Microscope, Carl Zeiss, Axiotech 100HD, Germany)과 주사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e, JSM-IT300LV, Jeol, Japan)의 후방산란전자(BSE) 모드로 관찰했다. 성분 및 원소 분석은 주사전자현미경에 부착된 에너지분광분석기(Energy Dispersive Spectroscopy, X-MAX 7, Oxford, England) 및 전자현미분석기(Electron Probe Micro Analyzer, JXA-8230, Jeol, Japan)를 이용했다. 에너지분광분석기를 통해 청동에서 검출되는 원소를 확인한 후 전자현미분석을 통해 총 9종의 원소(Cu, Sn, Pb, Fe, Zn, Ag, As, Bi, S)에 대한 정량 분석을 실시했다. 각 시편에 대해 최소 3회에서 최대 6회의 면분석을 실시하여 신뢰성있는 분석결과를 얻고자 했다.
3. 연구 결과
전자현미분석을 통한 청동용기 14점의 정량분석 결과는 표 1과 같다. 부식물이 존재하지 않는 바탕금속의 전체 함량은 100±3 wt%로, 신뢰성있는 결과를 얻었다. 청동용기 14점은 Cu-Sn의 이원계 합금 소재로 제작되었으며 Sn의 함량은 9.58 wt%에서 19.67 wt%까지 다양하다. 이를 통해 청동용기의 제작에 사용된 합금 소재 내 Sn의 함량이 일관되지 않음이 확인된다. Pb, Fe, Zn 및 Bi은 미량 검출되었으며 As의 경우 1 wt%가 넘는 시편(1235-6 및 1235-12)이 확인된다. As는 Sn과는 달리 합금 제작 단계에서 의도적으로 첨가된 것이 아니라 구리 광석 내에 포함되어 제련 과정에서 제거되지 않은 것이다[14]. 청동용기에서 주성분인 Cu와 Sn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원소가 1 wt% 내외로 검출되어 제작 시 제련과 정련을 통해 광석 내의 불순물을 제거한 순도 높은 금속을 소재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성분 분석을 통해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 내 청동 매납구덩이에서 출토된 청동용기는 Cu-Sn의 이원계 합금 소재로 제작되었으며 주성분을 제외한 다른 원소는 의도적으로 첨가한 것이 아닌, 원료 광석에서 기인한 불순물로 판단된다. 또한 Sn 함량이 다양한 것을 통해 통일신라시대 청동용기의 제조는 균일한 청동 조성을 위한 제어된 공정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청동용기 14점에 대한 주성분과 미세조직 관찰 결과를 표 2에 요약했으며 이를 통해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용기는 일관된 기술체계로 제작된 것으로 판단 했다. Sn의 함량이 10~20 wt%인 합금 소재를 이용, 주조와 담금질처리를 거쳐 용기를 제작했으며 일부 시편에서는 쌍정 등이 관찰되어 열간단조 공정을 추가했음을 알 수 있다. 각 시편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미세조직을 표 2에 기술했다.
그림 2는 청동용기(1235-2)의 구연부, 동체부 및 저부에서 채취한 시편의 미세조직을 보여주는 광학현미경 사진으로, 각각의 조직이 상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구연부(B)에는 α상이 수지형상으로 존재하며 수지와 수지 사이에서는 다른 금속 조직이 존재하는데 이는 γ상이다. 동체(C)와 저부(D)에서 구상의 α상과 침상의 β(M)상이 존재하는데, 동체에 존재하는 α상의 크기는 저부의 α상보다 크다. 또한 저부의 α상은 길게 연신되어 있으며 결정립 내에서 쌍정이 관찰된다. 미세조직을 통해 청동용기(1235-2)의 제작 공정을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먼저 Cu-Sn 합금 소재의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주조 공정을 실시한 후, 용기의 바닥면만을 단조 가공했다. 이는 고온 및 국부 성형으로 인해 α상끼리 겹쳐지며 길이 방향으로 조대화된 α상과 α상 입계 내에 존재하는 쌍정을 통해 알 수 있다. 이후 취성이 강한 δ상의 생성을 억제하기 위해 586 °C 내외의 온도 구간에서 담금질(Quenching)을 하여 강도가 높은 가능한 γ상 또는 β(M)상이 생성되도록 했다. 구연부, 동체, 저부에서 관찰되는 크기와 형태가 다른 α상은 냉각속도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구연부에서 보이는 γ상과 동체, 저부에서 관찰되는 β(M)상은 역시 담금질을 위한 가열시간 또는 냉각속도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용기에서 확인되는 미세조직을 시편 채취 위치에 따라 정리했으며 이를 Cu-Sn 평형상태도에 대입한 결과는 그림 3과 같다. A와 B는 각각 다른 청동용기의 구연부에서 채취한 시편의 미세조직이다. A는 청동용기(1235-25)의 구연부로, 침상의 β(M)상을 바탕으로 α상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α상의 입계 내에는 쌍정이 존재하지 않아 주조 공정 이후 열간가공은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B는 청동용기(1235-3)의 구연부이며 A와는 달리 γ상을 바탕으로 수지형상을 가진 α상이 자리잡고 있다. C(1235-3)와 D(1235-5)는 용기의 동체부 미세조직으로, 주조시 형성된 수지상을 가지고 있지만 끝모양이 구상으로 변한 α상과 담금질 조직인 γ상 및 β(M)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C, D 역시 주조 공정 이후 열간가공은 하지 않고 담금질처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용기 저부의 미세조직은 E(1235-19)와 F(1235-21)로, β(M)상을 바탕으로 조대하게 성장한 α상이 위치하고 있다. 조대한 α상은 주조 공정에서 응고반응이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β(M)상의 존재로 주조 공정이 완료된 이후, 586 °C 근처의 온도로 재가열하여 담금질처리가 가해졌음을 알 수 있다. 관북리 백제유적의 청동매납구덩이에서 출토된 청동기는 주물 유기의 형태로, 주조 이후 서냉한 다음 586 °C 근처까지 재가열한 후 담금질하여 생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시편 채취 위치에 따라 미세조직의 형태가 다름은 B(1235-3)와 C(1235-3)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구연부와 동체부에서 모두 β(M)상을 바탕으로 α상이 존재하나 구연부의 경우 동체보다 β(M)상이 발달되었으며 α상의 크기가 미세해지고 수지상의 배열만 유지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가열시간과 관련이 있는데, 가열시간이 적을수록 주조시 형성되어 있던 수지상정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특히 β(M)상이 생성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가열시간을 유지했을 때 α상은 구상으로 변하고 수지상도 감소하지만 α상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수지상의 패턴과 유사한 배열구조를 유지한다[15].
비금속 개재물은 정련 과정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광석의 불순물을 의미하며 산화물 또는 황화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청동의 미세조직 내 존재하는 비금속 개재물의 화학 성분분석을 통해 제작에 사용된 구리 광석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주사전자현미경의 후방산란전자 이미지를 통해 청동용기 14점 내 존재하는 비금속 개재물을 확인한 결과, 비금속 개재물은 γ상 및 β(M)상 등의 바탕 조직 내에 존재하며 원형 또는 다각형의 입자 형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림 4). 비금속 개재물은 Cu와의 용해도가 낮아 분리된 상으로 나타나게 된다[17]. 흑색의 원형 조직은 미세조직 내 기공이며 백색의 비정형 입자는 Pb 편석물이다. 비금속 개재물이 Pb 편석물과 같이 존재하거나 기공과 같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Pb가 부식되어 빠진 공간에 재석출 이차생성구리가 형성되어 이차생성구리와 비금속 개재물이 존재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미세조직 관찰을 통해 관북리 백제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용기의 비금속 개재물은 단조 공정으로 인해 연신된 형태가 아닌, 원형 또는 다각형의 형태임을 확인했으며 이러한 비금속 개재물은 부식 저항성이 좋아 부식이 심한 시편이라도 부식이 되지 않고 존재함을 알 수 있다[18].
비금속 개재물의 화학 조성을 확인하기 위해 SEM-EDS를 이용하여 각 시편에 존재하는 비금속 개재물 263개를 정밀 분석한 결과 Cu, Sn, Fe, S와 Se, Te이 검출되는 것을 확인했다(표 3). 표 3은 각 시편에 존재하는 비금속 개재물의 원소 함량의 평균을 제시한 것으로, Cu는 68~77 wt% 범위에서, S는 대부분의 시편에서 20 wt%내외로 검출되었다. Sn의 함량은 평균 0.14 wt%이며 Fe는 3.03 wt%의 평균 함량을 보인다. 청동용기의 미세조직 내 Cu-S의 비금속 개재물이 존재하는 것은 황동석 등의 구리광석으로 제작한 구리 금속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황화물을 함유한 황화동광을 제련하는 것은 고대 야금학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경주 동천동 681-1번지 유적(8세기)을 통해 황동광을 사용하여 제련했음을 알 수 있다. 제련 과정에서 구리 금속으로 추출되지 않은 원소들은 불순물로 남아 금속의 미세조직 내 개재물로 존재하게 된다. 이는 원래의 황동광일수도 있고 구리 제련 과정 내 생성된 부산물일 수 있다[19]. 또한 비금속 개재물에서 낮은 함량의 Fe가 검출되는 것은 구리 광석에 철이 존재하거나 황동석(CuFeS2)과 같은 황화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비금속 개재물에서 중요한 원소는 Se와 Te로, 이는 청동용기류의 비금속 개재물에서 주로 검출된다. Se는 적게는 0.58 wt%, 많게는 3.79 wt%가 포함되었으며 Te의 경우 평균 1.22 wt%의 함량을 보인다. Se는 구리, 납, 은 등의 황화광석에 셀레늄화물의 형태로 들어 있어 이들 광석의 제련이나 정련의 부산물로 생산된다. 청동용기(1235-2)의 비금속 개재물을 EDS로 mapping한 결과 Cu, F, S 및 Se는 같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그림 5). Te 역시 구리, 은, 납, 수은 및 비스무스 광석에 화합물로 들어 있으며 구리나 납의 제련과 정련의 부산물로 얻는다. Se와 Te는 16족에 해당하는 칼코젠 원소로 금속 양이온과 결합하여 화합물인 칼코제나이드(Chalcogenide)를 만드는데 특히 Fe와의 결합을 통해 FeSe2, FeTe2와 같이 사방정계로 결정구조가 같은 금속 칼코제나이드로 존재한다[20]. 따라서 청동용기의 비금속 개재물에서의 Se와 Te의 유무는 제작에 사용된 구리 광석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10].
각 청동용기 시편의 비금속 개재물의 화학 조성은 크게 Cu-Fe-S-Se-Te 유형, Cu-S-Se-Te 유형, Cu-Fe-S-Se 유형, Cu-S-Se 유형과 Cu-S 유형으로 구분된다. 특히 Se가 검출되지 않으면 Te도 검출되지 않으며 같은 청동용기 시편이라 할지라도 비금속 개재물의 구성 원소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청동용기(1235-18)의 비금속 개재물은 Cu-S-Se 유형, 청동용기(1235-25)는 Cu-Fe-S-Se-Te 유형의 일관된 결과를 보여 한 종류의 원료 광석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 청동 매납구덩이에서 출토된 청동 용기 14점의 미세조직과 화학 조성을 통해 그 시대 기술 체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9~10세기 부여에서는 용기를 제작하기 위해 거푸집에 Cu-Sn의 이원계 합금 소재의 쇳물을 부어 원하는 모양의 용기를 제작한 후, 용기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586 °C 근처의 온도에서 재가열한 후 차가운 물에 넣어 담금질처리를 했다. 이러한 과정은 주물유기를 제작하는 과정으로 현대 유기 제작에도 사용되는 제조방법이다. 이는 부여 외에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동시대 청동용기에서도 확인된다.
표 4는 삼국~통일신라시대로 구분되는 청동용기의 금속학적 분석 결과를 정리한 것으로, 관북리 백제유적의 청동 용기와 유사한 제조 방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경주의 신라왕경 유적, 이천의 설봉산성 및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청동용기 역시 Cu-Sn의 이원계 합금 소재를 이용, 주조로 용기의 형태를 만든 후 서냉하거나 담금질하여 제조되었다. 또한 Sn의 함량이 일정하지 않아 일관된 기술체계가 생성되기 전임을 알 수 있다. 용기 제작에서의 일관된 기술체계란 방짜유기의 제작 방법을 의미한다. 방짜유기는 주석함량 22 wt% 부근의 Cu-Sn 합금을 이용하여 제작된 청동기를 말하며, 이의 제작공정은 700 °C 근처의 고온에서 가해지는 두드림 작업과 700 °C 근처에서 실행되는 담금질처리로 구성된다[10]. 하지만 통일신라시대의 청동용기의 제작에는 또한 열간가공 공정이 들어가지 않는다. 제작과정 중의 두드림 작업은 용기가 깨지거나 구멍이 나는 등 파손의 위험이 있다. 이에 주조로 형태만 제작하고 취성이 높은 δ상의 출현을 억제하는 담금질처리로 공정을 완료했다. 하지만 열가공은 잔류응력을 발생시켜 제품의 균열 또는 뒤틀림을 발생시켰을 것이다. 특히 열구배(thermal gradient)가 클수록 큰 잔류응력이 발생하게 되는데[21] 청동용기 제작시 이러한 것도 고려해서 제작했을 것이다. 통일신라시대로 구분되는 청동용기류 중 열간가공한 것도 확인되는데 이는 28건 중 3건으로, 보편화된 공정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청동용기 제작 공정을 기술 발생 시기로 배열하자면 형태를 만드는 주조 공정 이후 용기의 강도와 경도를 높이기 위한 담금질처리가 나타났을 것이다. 이후 열간단조 공정이 시작되었으나 Sn의 함량이 일정하지 않아 제작 또는 사용 중 파손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Sn의 함량은 22 wt%, 열처리 온도는 700 °C일 때 최적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을 확인한 후 방짜기술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기술체계를 놓고 볼 때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청동용기가 논의 대상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그 다음은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과 이천 설봉산성 출토 청동용기, 마지막은 신라 왕경 출토 청동용기 순으로 정리될 수 있다.
4. 결 론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의 청동용기 매납구덩이에서 출토된 9-10세기의 통일신라시대 청동용기류의 미세조직 및 화학 조성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1. 청동용기 14점은 Cu-Sn의 이원계 합금 소재를 이용하여 제작되었으며 Sn의 함량이 적게는 9 wt%, 많게는 20 wt% 내외로 일관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Pb, As, Fe 등 원소들은 원료 광석에서 기인한 것으로 미량으로 존재한다.
2. 미세조직 관찰을 통해 주조와 담금질처리를 통해 청동용기를 제작했음을 확인했다. 또한 냉각속도의 차이로 인해 같은 청동용기일지라도 채취 위치에 따라 다른 미세조직을 보인다.
3. 청동용기의 비금속 개재물에서 Cu, Fe, S, Se, Te가 검출되어 제작에 사용된 원료 광석을 추정할 수 있다. Se와 Te의 경우 구리, 납, 은 등의 황화광석과 관련 있으며 특히 Se의 경우 황동석(CuFeS2)의 제련 부산물로 확인된 바, 구리 원료 광석으로 황동석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4. 동 시기로 추정되는 익산 미륵사지, 신라 왕경, 이천 설봉산성 등에서 출토된 청동용기류의 금속학적 분석 결과와 비교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용기 제작기술에 대해 정리했다. 통일신라시대는 Sn의 함량이 일정하지 않은 청동 소재를 이용, 주조로 형태를 제작하고 담금질처리로 공정을 완료했다. 또한 열간가공이 시작되던 시기로, 제작 기술체계를 통해 청동용기의 시대 구분 또한 가능했다.
청동용기는 인류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품이며 또한 제작기술이 발전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기존의 금속학적 연구를 통해 방짜기술의 발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기술이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기술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청동 원료 광석을 확인할 수 있는 비금속 개재물에 대한 연구 또한 진행 중이다. 금속학적 분석을 통해 다양한 시대·지역에서 출토된 청동용기 데이터를 축적한다면 앞서 언급한 의문점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Acknowledgements
본 논문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 조사연구(R&D)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며, 분석 시료를 협조해주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감사드린다.